들림 평상

서열중심문화에 관하여 본문

노트/일상

서열중심문화에 관하여

들림 2014. 8. 13. 13:08

서열중심문화는 힘의 논리로 지탱되는 권력구조를 그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서열중심문화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관계맺기는 결코 권력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설령 권력구조에서 벗어난 구성원간의 정서적 유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서열중심문화의 산물이라기보다 개별적 인간과 인간의 진실된 만남이 이룩한 성과이다.


결국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관계맺기의 결정권은 보다 많은 힘을 갖고 있는 쪽이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서열중심문화에 기반한 정서적 성패가 (P가 좋아하는 프레이리의 말을 빌려) 억업자의 관용이나 성의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우습지만 권력구조 속에서 정서적 관계맺기는 권력구조에 기반하지 않은 정서적 유대와 마찬가지로 구조나 체제가 만들어내는 문화가 아닌 개별적 인간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역설은 '개인의 선택이 불가능한 관계인가', '선택한 관계인가'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열중심문화에서 정서적 관계맺기의 성공은 개별적 인간의 공이며, 실패는 선택불가한 구조의 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더욱 더 강한 서열중심문화가 존재하는 곳일 수록 더욱 빈번한 정서적 관계의 실패가 일어나며, 그 실패의 결과가 매우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추억으로 치환되는 정서적 유대를 학교나 군대의 공으로 돌리고, 그 추억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비인간적인 사건들을 악마적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개인과 구조, 어느 한 쪽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나 군대에서 맺은 좋은 관계는 그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사람과 만났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그 곳이 아니였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바보같은 가정은 잠시 접어두자. 대신 그 곳이 아닌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다는 가정도 접어두겠다.)


그러나 학교나 군대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비극은 선택불가한 구조가 아니였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다. (이는 비극적 사건의 가해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열중심문화의 낭만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 속에 숨어있는 폭력성은 변명이 불가한 구조(혹은 구조가 만들어낸 문화)의 명백한 실패이다.

'노트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8 을 기억하며  (0) 2016.05.18
고 고현철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0) 2015.08.18
지금  (0) 2015.05.06
노예의 등은 노예가 민다.  (0) 2013.01.24
학문의 분업화와 융합의 시대  (0) 2012.01.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