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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림 평상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광저우와 파리를 거쳐 리스본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목적지를 모른 채로 떠나는 비행과도 같았다. 낯선 말들에 당황하고, 연착으로 밤을 지새우고, 굳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긴 대기시간을 지나며 입국과 출국을 반복하는... 결국 이 지리멸렬하고 고된 여정들은 당신에게 닿기 위한 경유지였다. 그렸던 땅과 바다가 창 너머로 아득하게 보일 때 우리가 도착을 실감하는 것처럼. 2층 창밖으로 당신이 걸어오는 것을 보며 삶의 목적을 확신했다. 내 지난 날들을 비로소 긍정하게 됐을 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신을 향해 삶의 중심으로.
바삐 일어나느라 밥을 하지 못한 날. 혹은 아침 차려먹기 귀찮은 날. 출근길을 조금 돌아 맥도날드 서면점에 들러 맥모닝 세트를 먹곤 한다. 서면으로 출퇴근하기 전까지, 내게 주디스태화 앞은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였다. 그곳은 원래부터 약속명소였다. 평범한 목요일 저녁, 그저 퇴근하는 걸음 중 하나. 나는 그곳에 멈춰섰다. 녹색당과 노동당의 공동정당연설회가 있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발부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지나는 길이고 시간대도 맞아 참석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 무척 반가웠지만, 어쩐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가능한만큼의 미소와 눈인사를 나눈 후 현수막 뒤에 섰다. 우산과 가방을 내려놓고 녹색 종이를 들었다. 발언자 분들의 목소리는 엠프를 나오기도 전에 나에게 닿았다. 나란히 ..
1. 선생님을 실제로 뵙는 것은 2012년 이후 두 번째였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조금 말라보였다. 영상으로 본 송전탑 투쟁과 지난 총선 장면들이 언뜻 스쳐갔다. 그를 알려준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런 선생님을 만나거나,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했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인사만으로 충분했다. 자세한 얘기는 그저 손을 잡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날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환영해주는 손이 단단했다. 아프지 않을 만큼 힘껏 붙잡았다. 2. SNS에서만 보던 후보자들을 실제로 봤다. 몇몇은 사정상 오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큰일을 치르고 난 사람들의 말씨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그처럼 근기가 입을 빌어 하는 이야..
2016. 3. 20 이제야 왔습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나리를 봤습니다. 노란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있는 그 길입니다. 의경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이곳에 근무했다는 친구가 떠올라 잠깐 웃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꽃입니다. 은은한 목련, 고고한 매화, 화려한 홍매화, 아직은 구분이 힘든 생강나무와 산수유. 땅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그득합니다. 계절은 사람의 마음과 상관없이 피고 지는 잔인한 면이 있습니다. 아마 2008년경이겠지요. 당시 저는 대학교 동기들과 무한도전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우리는 매번 특집이라며, 여기저기 쏘다녔지요. 이때 저는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봉하마을 한번 가자..
왜 타인의 고통은 비슷하게 겪어봐야 조금, 조금이나마 가닿을 수 있는 걸까요. 늘 가해자의 입장에서 살았으면서, 잘못을 몰랐고.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고 현행범이었고. 공범이었고. 기득권자였는데 말이죠. 반대로 같은 이유에서, 아플 수 있는 일인데도 아프지 못했습니다. 힘든 건데 힘들지 못했어요. 슬프다 얘기할 수 없었어요.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는데. 애꿎은 사람들에게만 화풀이를 해온 것 같아요. 그것이 특정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문제였는데. 나의 문제면서, 너의 문제고, 우리의 문제였는데. 남성의 몸으로 기껏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무척이나 너무너무 협소해서 미안합니다. 그것만으로 힘든데. 다들 어땠을까요. 이것조차 다 말하지 못한 고통, 너무 잔혹한 사건들 사이에서 말하기엔 민망하다고 느껴..
2016. 3. 23 #8 광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별밤에서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가 아닌 진짜 밥다운 밥이었다. 김치, 시금치, 연근조림, 콩자반 등 밑반찬들은 정갈했다. 계란을 입혀 노릇노릇 구운 동그랑땡, 조개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메뉴였다. 주인 분은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셨다. “그때는 나도 어릴 땐게. 잘은 기억이 안나요. 우리 집이 이불집을 했는데, 어른들이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두터운 솜이불이 어따 쓸란가 했더니. 그거를 벽마다 둘렀데요. 총알이 날아오니까. 솜이 총알을 막아줄 수 있응께.”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됐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총소리가 얼마나 크고 요란한지 알 것이다. 고요는 그토록 쉽게 깨어졌다. 평온한 일상에는 균열이 ..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가끔 내가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됐다고 느낄 때면, 그와 동시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딱 그만큼 알게된다. 그래서 배움이란 길은 늘 내 걸음보다 앞에 존재한다. 어떤 미래가 올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지금을 굽어 돌아본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지금이다. 시간의 절벽에서 유일하게 내가 잡은 끈이 지금인 것처럼. 있는 힘껏 지금을 놓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언제나 내게 처음이고 마지막이니까. 2015. 3. 2
서열중심문화는 힘의 논리로 지탱되는 권력구조를 그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서열중심문화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관계맺기는 결코 권력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설령 권력구조에서 벗어난 구성원간의 정서적 유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서열중심문화의 산물이라기보다 개별적 인간과 인간의 진실된 만남이 이룩한 성과이다. 결국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관계맺기의 결정권은 보다 많은 힘을 갖고 있는 쪽이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서열중심문화에 기반한 정서적 성패가 (P가 좋아하는 프레이리의 말을 빌려) 억업자의 관용이나 성의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우습지만 권력구조 속에서 정서적 관계맺기는 권력구조에 기반하지 않은 정서적 유대와 마찬가지로 구조나 체제가 만들어내는 문화가 아닌 개별적 인간의 특성에 의해 좌우..
사람들은 원형경기장에 검투사를 밀어넣고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즐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검투사들의 등을 떠미는 것도 검투사였던 노예들이다. 그들은 검투사가 되어 나가는 다른 노예들의 귀에 속삭인다. 내 말대로 하라고. 그게 맞는 것이라고. 검투사도, 등을 떠미는 노예도 모두 그 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노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본성이 바라는 것은 건강한 그들도 자신처럼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로삼는 것이다. 검투사는 그 노예의 잃어버린 팔과 다리를 보지 못한다. 그저 노예들의 말에 따라 상대를 향해서 미친듯이 칼을 휘두를 뿐. 스스로 노예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칼이 서로를 향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참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우리의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