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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림 평상
여로 연필은 닳은 말발굽게르조차 견디지 못해사막으로 쏟아지는 밤 맨살에 부딪혀세말하는 별자리 소녀는 오늘도 국경을 넘어백지를 달리는 이름의 획 빛과 어둠에 부둥키는머나먼 가루의 나라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친구의 생일에 이야기를 보탰다.몽골 여행이나, 자기 이름으로 된 장르를 쓰겠다는 그런 말들. 모든 것을 벗어나 달리는 문장을 상상했다. 재밌는 친구다.
걸어가는 말 40도의 소나기라 생각했다몸을 질러 달아날 준비를 하며해가 한쪽 뺨에 머춤으면앓았던 일도 잊어버리는 아침이 올 거라고 너는 소리를 크게 벌려 이야기하곤 했다서울살이에 녹아 흐물러버린 말씨에도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단어들을 보며내 생각이 틀렸음에 감사했다 네가 익히고 있다는 나라의 말은유난히 피어나는 꽃향기처럼 들린다나는 멎지 않는 우기를 헤엄치는나비의 젖지 않는 날개를 상상해보았다. 그곳에서도 너는갓 지은 밥처럼 숨을 내쉬면서자라나는 무릎이 지르는 비명을 듣겠지너의 이야기는 여물어가는 꿈들의 뒤를 쫓아성큼 경쾌하게 보폭을 넓힐 거고 토요일은 친구의 생일이였다.연락이 끊기지 않은 몇 안되는 친구다.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시를 지었다.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 살아주길
마음 맞이 서먹한 이의 눈빛에도당신의 그림자가 졌다 그의 연인이 저물어가는 속도로연해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이름이 곪던 밤들과그의 눈물은 애들처럼 막 친해졌다 그의 볼에 묻은 당신의 얼룩을휴지를 건네어 닦으려 했다 당신이 깃든 그의 신전에서모든 신앙고백을 봉헌했다 그의 미소를, 미소를, 기도한다내 주름질 입술 끄트머리가 들썩했다
살게 될 집에 오후 내 머물렀다. 인테리어 업체들은 내부공사 견적을 내려면 현장방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약속 사이 시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베란다와 연결된 작은 방. 전 주인의 침실이었다. 그녀는 두 벽면에 연분홍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문은 그보다 진한 핑크색이다. 샹들리에 속의 노란 램프 불빛은 유리조각처럼 흩어졌다. 그림자는 물체의 임종을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잠깐 했다. 가구 하나 없는 방은 장면이 전환될 때의 잔상 같다. 얼마 뒤면 이 방에서 잠이 들 것이다. 빗소리는 베란다 슬레이트 천장을 연신 두드렸다. 열어둔 중문을 통해 익숙해질 앞날의 풍경을 살짝 내다본 느낌이었다. 그녀가 칠 하지 않은 하얀 벽지에 기대 한강의 『흰』을 읽었다. 제목처럼 얇은 책이었고, 시처럼 농축된..
22:30~00:00 전파는 개 혓바닥에 수로를 냈다 (꼴깍, 꼴깍)오늘도 가득 고인 말들을 삼키는 고요심해로 추락하는 단어의 치어 떼들 (딸깍, 딸깍)오늘도 다시 출발선에 선 심전도 소리너는 전력질주하는 고래의 숨방울 전선은 실어한 먹구름어미는 종일 겨우 뒷걸음마만 땐다
당신이 싫어하진 않을 것 같은 시 당신은 약으로 시작하는 시간을 못견뎌했다그래서 정도로 끝나는 이야길 섭섭해 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면서도당신은 당신의 모든 문장을 직유했다한 번도 같은 반인 적 없던 동창의 이름을 떠올리듯매사에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당신은 발자국에 물이 고일 때까지 자주 울었다그것도 모르고 나란한 볼우물을 자꾸 채근했다깜빡하면 당신은 마른 모랠 몰래 무궁화처럼 내쉬었다 나는 당신을 약 4년 정도 사랑했다공책에 연필이 닿기도 전에 지운 문장이다아마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 다 나는 고생물처럼 크레이터 안에 쪼그리고 있다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성긴 숨들에 매달린 채당신 발목의 기울기를 닮은 성을 짓는다
어긋난 밤 범어사 아래 주차장은밤이 맑다 “우리……. 별이 다 뜰 때까지만 같이 돌자.”눈치 빠른 그녀는 빈칸도 알아듣고 집행인처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단어는 머리에 손을 넣어 만지는 것만으로 기류가 멈췄다나는 얹힌 바람을 다 토하고서야 겨우 발을 땠다 마주보던 손들은 돌아앉았지만그네에는 궤적의 기억이 있다그 암기력이 무안해 손끝이 시렸다그녀의 투명 메니큐어는 뻔뻔히도 어둔 구석까지 휘휘 저었다 우리에게 지각한 별을 기다릴 인내심은 있었나보다혹시 하나 뒤늦게 도착할까봐혹은 서로가 그렇게 생각할까봐에이사이드든 비사이드든 고장난 레코드판은 잘도 돌아갔다 드디어 산사의 불이 꺼졌다그녀는 한참 텅 빔을 응시했다나는 그녀가 없어진 자리에서 10년은 늙은 이마로별과 별 사이에 시력을 있는 힘껏 던졌다 반짝
(어디여도 괜찮은)서울의 봄 시 읊어주던 선생까지 자릴 비운 날처음으로 야자를 쨌다 점령군이 물러가고난 프라하의 침대 위백색 밤에 잠겼다 원 스트라이크!하나만 더투 스트라이크!그렇지!삑-티비를 껐다곧바로 ㄱ, ㅗ, ㅁ, ㅗ, ㄱ유성매직으로 휘갈긴 장래희망주황불, 엑셀은 바퀴벌레 최후처럼 꿈틀 “해방” 두글자창씨개명 전 이름인 듯 입술 끝으로 받들고기념사진 촬영을 연습한다, 하다가반전된 시곗바늘 아래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불온한 소문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걸아이 시체 앞 부모처럼 확인한다 결국 쓰레기통 속 종이뭉치라도언제나 혁명의 구호로 적힐아련한 첫문장
물공포증 난 트라우마에서 태어났어 양부모는 반쯤 덜 불행하길 바랐어줄담배와 코 묻은 휴지가 서로를 더듬고 몸을 섞던 날(출생의 비밀) 두 지류에서 흘러온 오폐수 거품이씨앗주머니처럼 펑 하고 터질 때난 발아했어 내 손과 발은 그런 걸 먹고 잘도 자랐지“아무거나 잘 먹어요”손짓발짓으로 거짓말부터 익혔지 그때부터몸속에 발소리가 따라오는 골목이 흘러지독한 스릴러 감독도 로케이션을 포기했다나 장마가 계속되는 철거촌대략 3일에 한 번만 약에 취한 해가 떠손꼽아 기다리는 열흘에 하루소풍날에는 꼭까만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잠복근무를 해 난 건기에도 허우적 허우적아마 달에서도 발버둥치다 익사할 거야 누군가 잡아주어 똑바로 서면4등신이라도 숨 쉴 수 있을 텐데 아엄마처럼 아빠처럼살기 싫었어그럴 땐 언제고 결국 더치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