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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고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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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고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들림 2012. 2. 23. 09:29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홍영남, 이상임 | 을유문화사 |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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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오해들

 모든기관이 선정한 과학분야 추천도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기적 유전자』는 혁명적인 책이다. 1976년에 출판된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었으며, 저자인 도킨스에게 명예와 더불어 엄청난 안티를 남겨주었다. 과연 그럴 만도 한 것이 제목부터가 논란거리다. '이기적(혹은 이기주의)'라는 말은 서구 사회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말인가 보다. 그런데 거기다가 '유전자'라는 말을 붙였으니,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 우리 몸에는 우리를 이기주의로 만드는 유전자가 있단 말인가?'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지 모른다.

 책을 펼치기 시작할 때도 우려는 없어지지 않고 더욱 커진다. 생명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니! 자칫 잘못하면 도킨스를 유전자 결정론자로 오해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생명(개체)은 유전자를 담는 생존기계, 로봇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도킨스를 오만한 미친 과학자나 반인본주의자, 우생학자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종교계의 대부분(특히 개신교나 카톨릭)은 그와 그의 책을 사탄으로 규정하며 지금까지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도킨스 역시 파이터 기질이 있어서, 진화론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진리와 합리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매일같이 종교와 싸우고 있다.

 이렇듯 불온서적으로 보이는 『이기적 유전자』이지만, 이미 과학계에서는 불멸의 고전이 된 모양이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와있듯 76년에 발간된 책임에도 30주년을 맞이하도록 거의 수정된 부분이 없다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가 아직도 읽을만한 가치로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과학 부분의 교양서는 사회과학 분야와 다르게 일반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쉽고 재밌게 읽힌다. 다만 과학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한한 공포 - 아마 학창시절의 쟤물포(쟤 때매 물리 포기), 생포였던 문과생들 - 때문에 접근 자체가 조금 꺼려질 뿐이랄까?
 

『이기적 유전자』와 휴머니즘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있다거나,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유전자 자체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어떠한 방향성이나 의식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본능적인 상태이다. 만약 이와 같은 주장이 유전자 결정론과 이어진다면 인간은 좌절을 겪겠지만, 도킨스가 주장하듯 인간은 유전자의 결정에 반발하는 일을 줄곧한다.(자살, 피임, 생면부지의 남을 위한 희생)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철학의 종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로 도킨스의 주장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지지한다. 사실 이 '악'이라는 것도 '이기적'이라는 단어 안에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 뉘앙스를 고려했을 때 그런 것이지, 윤리적 오해를 피하자면 인간이 악하다는 것은 '본성'이 아닌 '본능'이라고 고치는 것이 더 좋겠다. 그리고 '인간'이란 단어를 인간의 유전자로 고쳐야 보다 오해를 피할 수 있는 답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칸트는 정말이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칸트는 인간이 본능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한다.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능에 따른 선택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 이성적 존재자로서 자신만의 보편적인 도덕법칙에 따르는 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자율이며, 자유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아닌 개체는 이타적일 수도 있고 이기적일 수도 있다.

 다른 모든 개체, 즉 자연에서는 이에 대해 선, 악 판단을 할 수 없다. 모두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본능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진화 과정 속에서 유전자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낸 고도도화된 뇌의 기능이다. 대신 이러한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가 되었다. 인간은 선악의 열매를 먹게 되었고, 그 모든 행위를 선과 악의 잣대로 평가한다. 이렇듯 유전자에 대항하는 새로운 자기복제자를 도킨스는 '밈'이라고 한다. 문화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이한 그의 발상은 많은 사회학자와 인류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체계적인 과학적 발상을 선물하였다.

  때로는 본능이, 때로는 이성이 선이 되기도 하며 악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많은 부분에서 본능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도킨스는 그러한 부분에서 더 많은 관대함과 이타주의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자연을 예시로 하여, 더 많은 경쟁을 이야기 하는 것과 다른 시각이다. 자연에는 방향성이 없다. 인간만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고결한 정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기적 유전자』를 강추하며

 나는 인간에 관해 많은 부분을 풀어놓았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이 초점은 아니다. 새로운(지금은 새롭지 않은) 다윈주의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이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진화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 우생학이라던지, 약육강식의 세계와 같은 오해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진화론'이라는 단어 자체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이 책을 기점으로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많은 과학 교양서들을 찾아보면서, 그 동안 과학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공포를 점점 해소해나가고 있다. 그만큼이나 복잡한 생각거리와 영감을 던져주는 『이기적 유전자』는 책장 한 편을 차지하면서 오래 오래 읽어볼만한 불멸의 고전이다. 또한 책의 저자 도킨스 역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자,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종교를 향해 쫄지않고 싸우는 무신론자 진영의 최선봉으로서 오래 살아남아 멋진 저작들을 많이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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