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 평상
정치판의 꼼수를 과학으로 뒤집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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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 장종훈 | 살림 | 20111027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학창 시절, 쟤물포란 별명을 가진 물리 선생님이 있었다. 과묵한 성격에 지루한 수업, 웃지 않는 포커페이스. 안 그래도 수식이 난무하는 물리라는 과목은 잠이 오기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물리 수업의 화룡정점이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교무실에 가지 않고, 과학실 옆에 있는 물리실에서 나오지 않았던 선생님. 그 선생님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선생님은 사이코 과학자로 둔갑했고, 물리실은 졸지에 핵실험실로 탈바꿈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교성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조금 지루한 선생님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 선생님 핑계로 나는 문과를 선택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물리를, 과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과학을 흡사 전염병 보듯 두려워했고, 과학의 '과'자만 봐도 피해다녔다. 그렇게 나는 대학까지 '국어교육과'에 진학하면서 평생 과학과 결별할 운명이 될 뻔 했다. 심리학을 부전공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심리학은 과학이라는 사실을 모르고(아마 알았다면 절대로 부전공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당하게 부전공으로 선택한 뒤로 나는 과학에 대한 면역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리차드 도킨스와 우주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생명과 우주 외에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포기했던 물리에 관한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바로 UC버클리 물리학 교수인 리처드 뮬러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책이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인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비과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그의 교양 과학 강좌명이다. 책 날개에 소개된 것처럼 팟캐스트와 유트브의 교육 채널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사람은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강의와 책이 접목된 방식은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미 접한적 있는 방식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인기있는 강좌이고,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강의역시 70만 명이 넘게 시청했다고 하니 새삼 미국의 교양강좌들이 부러워진다. 그런 점에서『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물리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의 내용들은 최근 화두가 되고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테러부터, 에너지 문제, 원자력, 우주, 지구 온난화 등을 사회나 정치가 아닌 물리학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그간 잘 알고 있는 지식들이 사실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충격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 가령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는 화재로 인해서 무너졌다거나, 석유를 쓰지 않게 되는 것은 석유가 고갈되서가 아니라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 등은 매우 흥미로운 얘기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원자력에 관한 부분이다. 원자력에 대한 위험성이 사실상 그렇게 높지 않지만, 정책적으로 대피 등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사실 역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책의 제목은 '대통령을 위한'이지만 굳이 대통령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책에는 별도 코너로 '대통령을 위한 브리핑'이 마련되어 있다^^)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뼛속까지 문과인이라도 충분히 완독할 수 있다. 그말인즉슨 거의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에너지, 지구 온난화 등은 현실과 직결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평소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다른 과학 서적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데 비해 보다 사회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후속작이 나올 거라고 하는데 또 어떤 꼼수들을 밝혀줄지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의 사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욕심일까? 대부분이 미국의 사례임은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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