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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기억하며

들림 2016. 5. 23. 23:21

2016. 3. 20





이제야 왔습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개나리를 봤습니다. 노란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있는 그 길입니다. 의경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이곳에 근무했다는 친구가 떠올라 잠깐 웃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꽃입니다. 은은한 목련, 고고한 매화, 화려한 홍매화, 아직은 구분이 힘든 생강나무와 산수유. 땅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그득합니다. 계절은 사람의 마음과 상관없이 피고 지는 잔인한 면이 있습니다.


 아마 2008년경이겠지요. 당시 저는 대학교 동기들과 무한도전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우리는 매번 특집이라며, 여기저기 쏘다녔지요. 이때 저는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봉하마을 한번 가자구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당시 회자되던 당신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논일 하는 모습, 뒤에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 타는 모습. 지금까지 대통령들의 임기 후와 달라서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YS는 내 친구>라는 게임북으로도 느끼지 못했던 친밀함입니다. 그때 당신은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우리도 갔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요? 추모의 집과 당신의 묘역이 없던 봉하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소식을 접한 것은 군대에서였습니다. 일병 때쯤입니다. 아침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던지, 구보를 끝내고 생활관에 와서였던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뉴스보도와 유서에 대한 언급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느껴지던 죄송함. 그 감정은 그 이후로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사실 대통령 시절의 당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치에 무심한 청소년이었고, 가끔 언론에서 탄핵 같은 큰 사건들만 스쳐 들었습니다. 2007년, 그러니까 제가 대학교 새내기이던 당시엔 그런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돌부리에 걸려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공기초였던 수사학 시간에 조원들과 이야기가 막힐 때면 깔깔거리면서 그런 말을 뱉었습니다.


 이후에 당신의 자서전을 읽고, 많은 자료를 접하면서 무척 죄스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 삶의 굴곡들은 매번 저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변호인에서 나왔던 인권변호사 시절, 스타가 되었던 5공 청문회, 3당합당 이후 당신이 했던 말들, 많은 연설, 평검사와의 대화, 그리고 원래부터 좋아했던 임기 후의 모습까지. 아내에게 손찌검 한 일 같은 자신의 과오들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모자람과 그 모자람을 바라보고 변화하는 과정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솔직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죽음까지도 삶의 함축인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게 아닐까요.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이, 또 운명이라는 당신의 마지막 말이 아프지만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왜 이 세상에서는 대통령의 꿈보다 농부의 꿈이 이루기 힘든 걸까요.


 그리고 늦게나마 반성합니다. 장난이나마 당신 탓으로 돌렸던 스무 살의 날들을. 남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존재 자체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까운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은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연약한 인간의 마음부터 45억년을 버텨온 행성의 암석까지. 이왕이면 최소한으로 죄의 무게를 덜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친구처럼. 조금씩 고쳐나가야겠습니다.


 저는 언제쯤 선함을 연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정당한 분노를 감추지 않고, 불의와 마주할 수 있을까요? 삶의 주인으로서 내 생활을 경작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어머니가 아이를 부릅니다. "민주야!" "여기 와서 대통령 할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 또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추모식 사진을 보며 말합니다. 노란 물결 속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이때 니 유모차에 있었는데." 아이는 순진하게 묻습니다. "왜 갔는데?" "이제 못보니까 보고 싶어서."


 그들이 지나간 뒤에 당신의 비석 앞에서 섰습니다. 대통령을 지우고, 이름 세 글자 앞에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제야 와서. 그리고 당신에게 상처를 줘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방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당신이 삶과 죽음을 통해서 가르쳐준 진실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나의 행복은 사회의 불행과 괴리된 것이 아님을. 분노가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나중은 없다는 것을. 보고 싶어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고맙습니다.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아직 짐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덜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물어야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아직 저를 들여다볼 일이 남았습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2.

 

2002년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상대편인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아 공격했다. 아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이런 아내는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자격이 없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를 처음 만났을 때,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 탐탁치않아 했다고 한다. 둘을 이어준 것은 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에게 책을 권했고,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책 추천을 부탁했다. 둘 사이에 책이 오가면서 8개월이 지났다. 마침내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둑길을 거닐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후에 권양숙 여사가 영부인이 된 후에 도서관 사업에 뛰어든 것이 이와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양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엔 가난 콤플렉스 때문에 그토록 사법고시에 매달렸고, 돈 잘 버는 조세 전문 변호사가 됐다. 부림사건을 변호하면서 잘사는 길을 포기하고 인권에 눈을 떴다. 그때 그의 나이 35살이다. 그전까지는 전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던 터였다. 그 이후로 노무현 대통령은 오로지 정의로운 세상, 사람답게 사는 삶을 위하여 헌신했다. 대통령이 되고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토록 꿈에 매진한 사람이 아내를 놓고서는 대통령 후보직을 포기하겠다 말한다. 전략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솔직한 그의 말이다. 진솔함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버지의 좌익 경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던 권양숙 여사였다. 그녀는 두고두고 이때의 일을 고마워했다.

 

사람이 오로지 사랑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꼭 해야 되는 일들이 있고, 맞서야 하는 불의가 있고, 함께해야 하는 슬픔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그 모든 과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곁에 있어야 용기를 낼 수 있고, 이를 지속할 수 있다. 세상이 좀 더 견딜만 해지는 것 뿐 아니라, 피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

 

내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질문들이 남아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고귀하고, 동시에 천박한가.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마음과 꺾이지 않는 강인한 심장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사람답기 위하여 나답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과 사랑에 관한 고민들을 넘어서자 더 큰 질문이 남았다. 열등감과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앞서 부조리에 맞섰던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깜냥이 없는 사람이라 번민하던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엔 알 수 없이 우울해져 우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랑을 위해서도, 삶을 위해서도 나는 매번 나여야 한다. 오롯이 진실하지 않고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좀 더 떳떳해지고 따뜻해지고 싶다.




미안해요. 

오늘 당신을 잊고 말았어요.

잠깐이나마,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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