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 평상

<화차>의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 『이유』 본문

감상/책

<화차>의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 『이유』

들림 2012. 3. 13. 12:31
이유 - 1998년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유 - 1998년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규원, 미야베 미유키 | 청어람미디어 | 20051205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1996년 일본, 고급아파트 단지인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의 웨스트타워 2025호에서 일가족 4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들로 추정되는 한 명은 추락사했으며, 부부와 노모로 보이는 사람들은 머리에 둔기를 맞은 채 죽어있었다. 2025호에는 고이토 노부야스 일가가 대출을 받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죽어있는 시신들은 고이토 노부야스 일가가 아니다. 2025호는 경매에 붙여졌으며, 그곳에는 임차인인 스나카와 일가가 살고 있었다. 경매의 매입자인 이시다가 현장에서 빠져나온 것이 밝혀지며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런데 스나카와 일가의 스나카와 노부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스나카와의 가족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무슨 『이유』에서 이런 끔찍한 범죄를 벌인 것인가?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에서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하다. 사회파 미스터리란 트릭과 범인찾기에 치중하는 본격 미스터리와는 다르게 범인의 동기나 사회적 부조리를 중심으로 다루는 장르문학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화차>의 원작자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는 추리소설 뿐 아니라 SF,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대중소설을 쓴다. 그 중에서도 『이유』는 120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이미 그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나오키상은 순수문학에 수여되는 아쿠타가와상과는 다르게 대중문학에 수여되는 상으로 신인작가 중 우수한 작품을 뽑아 1년에 2번 수상한다.)

 『이유』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중반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시점이다.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며 건설붐이 불었고 도쿄의 땅값은 미국의 한 주를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치솟았다. 중산층은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샀고,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게되자 땅값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배경 가운데 우리나라의 뉴타운과도 같은 '뉴시티' 역시 가격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고 고이토 노부야스처럼 건물은 샀지만, 대출금 때문에 어려워 결국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 경매를 통해 매입자에게 싼 가격에 건물이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 버티기꾼이 등장한다. 임차인이 있을 경우 함부로 내쫓을 수 없게 되는데 야쿠자나 병든 사람이 있는 가족 등은 매입자를 귀찮게 하여 결국 매입자는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한 '욕망'들은 결국 파멸의 촉매가 된다.

 이처럼 『이유』는 부동산 거품과 붕괴. 그리고 무절제한 소비와 사치. 이웃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삭막함. 10대 미혼모 문제 등 그 당시를 지배하던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무인칭' 화자를 빌려 서술한다. 화자는 누 구인지 알 수 없으며 전체적인 구성은 관련된 사람 한 명 한 명의 인터뷰와 심리묘사로 이루어져있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 인물은 사회의 부조리를 하나씩 안고 있다. 모든 인물은 흡사 실제로 존재하는 듯 생생하며 자연스럽게 사건과 이어진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필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소 호흡이 길고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 혼동스러운 점은 아쉽다.

 『이유』는 비록 일본사회에서 생긴 비극이지만,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부동산 폭등과 대출, 하우스푸어(집을 가지고 있으나 무리한 대출로 생긴 이자와 원리금 상환 부담 등으로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의 증가 등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고층아파트, 인간 소외 등도 역시 우리 사회에 오랜 문제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유』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답은 작가의 따듯한 시선이 녹아있는 카타쿠라하우스를 통해 찾을 수 있다. 힌트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