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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래픽 노블, 앨런 무어의 『왓치맨 Watchmen』 본문
왓치맨
- 저자
- ALAN MOORE 지음
- 출판사
- 시공사 | 2008-05-25 출간
- 카테고리
- 만화
- 책소개
- 그래픽 노블의 전설! 씬시티의 작가, 프랭크 밀러와 더불어 1...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다크나이트 Dark Knight(2008)]는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존 슈퍼히어로물에 대해 아이들을 위한 영화나 시간 때우기용 오락영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놀란의 <배트맨>은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과 슈퍼히어로의 가면 뒤에 숨어있는 고뇌를 멋진 영상으로 풀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이러한 성공은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 그 성공을 받치고 있던 기둥은 미국의 독특한 코믹스인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힘이 컸습니다. 그래픽 노블은 엄밀히 말하면 만화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코믹스와는 다르게 그래픽 노블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작품들은 소설이라 할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와 현실에 대한 풍자, 철학적인 비유와 상징들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앨런 무어
1980년대, 그래픽 노블이 이룬 혁명적인 변화의 선봉에 서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왓치맨(Watchmen)』의 작가인 앨런 무어(Alan Moore)입니다. 『왓치맨』을 포함한 앨런 무어의 작품들은 영화화됐을 정도로 아주 튼튼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원작과는 다르게 그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들은 원작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혹평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앨런무어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대중은 냉담했다.
그 한계는 앨런 무어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뛰어난 소설을 영화화할 때 겪는 흔한 실패였습니다. 그정도로 앨런 무어의 작품은 범접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진 만화책의 얼굴을 한 문학이었습니다. 『왓치맨』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왓치맨』은 1988년 가장 권위있는 과학소설상인 휴고상(Hugo Award)를 수상했고, 타임 매거진(TIME MAGAZINE)이 선정한 영어 소설 베스트 100에 선정되었습니다.
『왓치맨』의 이야기는 19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에 돌입하면서,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세계의 강대국들은 무분별한 군비경쟁에 돌입합니다. 버튼 하나로 한 나라가, 어쩌면 지구 전체가 멸망할 수 있는 상황. 그 칼날 위의 평화에서 왕년의 슈퍼히어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왓치맨』은 바로 그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슈퍼히어로 시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말이죠.
『왓치맨』은 기본적으로 탐정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1985년 10월 12일, 킨 법령(마스크를 쓴 영웅행위 금지법) 이후 유일하게 활동 중인 슈퍼히어로 코미디언이 살해를 당합니다. 로르샤흐 테스트 모양의 가면을 쓴 로어섀크는 코미디언의 죽음 뒤에 숨겨진 악취를 맡고, 그의 옛 동료들을 찾아갑니다. 은퇴 후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나이트 아울,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인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 오지맨디아스. 그리고 연인 사이인 닥터 맨해튼과 홍일점인 실크 스펙터.
오른쪽부터 실크 스펙터, 닥터 맨해튼, 나이트 아울(2대), 코미디언, 오지맨디아즈, 로어섀크
하지만 로어섀크의 경고에도 왓치맨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오지맨디아스가 킬러에게 암살 위협을 받고, 실크 스펙터와 싸운 후 토크쇼에 나간 존은 자신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는 심리 공격을 받아 화성으로 떠나버립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스크 킬러의 함정에 빠진 로어섀크는 그가 집어넣은 범죄자들이 가득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닥터 맨해튼이 사라진 미국에게 소련의 압박은 점점 거세어져 오고, 끝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합니다. 핵전쟁이 눈 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지구. 무력한 중년이 된 나이트 아울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이렇듯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왓치맨』의 가장 큰 장점은 사실성입니다. 앨런 무어는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임에도 슈퍼히어로의 탄생, 몰락의 과정을 미국의 근현대사 속에 포함시켜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또한 『왓치맨』의 리얼리즘이 돋보이는 부분은, 슈퍼히어로들에게 '슈퍼'가 거세되었다는 것입니다. 『왓치맨』의 영웅들은 진성장 센터에서의 사고로 원자구조를 통제하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초인이 된 닥터 맨해튼을 제외하고는 첨단 장비나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왓치맨』은 이러한 사실적인 배경설정으로 설득력을 획득했고, 그 토대 위에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창조했습니다. 동시에 그 캐릭터들을 통해서 선과 악에 관한 철학적인 고찰, 냉전시대의 본질과 핵전쟁의 공포, 여성의 성적 상품화 등과 같은 묵직한 주제에 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왓치맨』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인간에 대한 익숙하고도 낯선 관찰입니다. 앨런 무어는 초인인 닥터 맨해튼의 입을 빌려,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인간과 우리가 이루고 있는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왓치맨』이 갖고 있는 가치는 웬만한 문학작품을 뛰어넘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그러나 『왓치맨』이 일반적인 소설을 능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100% 이상 완벽하게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해적 만화. 1대 나이트 아울의 자서전 일부, 오지맨디아스가 경영하는 기업의 상품 광고, 신문기사 등 다양한 매체의 모습을 한 작은 이야기 줄기들이 이야기의 큰 줄기와 합쳐지면서 『왓치맨』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완성됩니다. 이는 보통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낯선 즐거움입니다.
물론 완벽한 작품은 없습니다. 『왓치맨』 역시 주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마지막 부분에서 유지해오던 리얼리즘의 끈을 놓고 초현실적인 소재에 기대고 있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냉전이 끝난 지금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작품이 가지는 주제의식도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왓치맨』은 떨어지지 않는 재미와 감동, 대중성과 예술성을 가진 대작입니다. 『왓치맨』은 아마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세대를 거듭해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래픽 노블로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명작. 저는 『왓치맨』을 그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블로거에게는 추천해주시는 분이 슈퍼히어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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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한국어 번역판으로 나온 초판은 제본과 번역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공사는 그래픽 노블을 출판하는 거의 유일한 출판사임에도 이러한 실수가 매우 아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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