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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얼어붙은 화살

들림 2012. 12. 13. 11:17


얼어붙은 화살





안젤름 키퍼(1945 ~ ), <믿음, 소망, 사랑>, 1984-1986. 혼합재료, 280 x 380cm, 호주 시드니.



 오늘도 벽에 부딪히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렇게 맞이하는 아침엔 꼭 한 끼를 거르게 된다. 12월의 아침 9시는 새벽에 꺼진 중앙난방의 온기가 완전히 사그라지는 순간이다. 옆방에 살던 한 언니는 이맘때의 시간을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불렀다. 내 몸 어딘가에 닿는 기숙사의 차가운 벽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줄 만큼 현실적이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벌레처럼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는 언제나 낯설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기서 나는 혼자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자라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하고 부끄러운 순간이다. 그 모든 시간들을 언니와 같은 공간에서 보낸 나에게 1인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붙박이로 되어있는 옷장과 책상 역시 내 방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소녀의 꿈 그대로였다. 그러한 환상은 쉽게 집착으로 변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방학 때도 집에 내려가지 않고 방을 지켰다. 나중에서야 나도 그저 붙박이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나는 이 방을 나가야 할 만큼 늙어있었다.

 

 시험은 끝이 났지만, 또 습관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책상 앞에 앉아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끔찍했다. 역시나 공부는 되지 않아 잠깐 쉰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정신없이 굴리던 마우스 휠이 빨간불 앞에 선 자동차처럼 급정거했다. 나도 모르게 마우스 위에 올려놓은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

 

- 심견우 작가 강연 갈 사람! -

 

 고등학교 때면 항상 심견우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리에 야자도 마다하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저 멀리 서점 간판이 보일 때부터 두근두근 거려서 서점 직원이 멋있게 보일 정도였다. 내가 심견우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가슴에 박힌 얼어붙은 화살이 녹을 때라는 단편소설을 읽고 난 후였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그의 글들을 계속 찾아 읽었지만 얼어붙은 화살보다 더 꽂혔던 글은 없었다. 첫사랑이란 것이 참 무서워서 누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물어볼 때마다 심견우와 얼어붙은 화살이 수록된 그의 소설집 절룩이는 그림자를 꼽곤 했다.

 심견우 작가의 강연을 알리는 글은 두일이가 쓴 글이었다. 강연을 알리는 포스터 아래로 처음 보는 이름들이 오빠 저도 심견우 작가님 좋아해요.’, ‘같이 가요. 오빠같은 어색한 댓글들을 달아놓았다. 댓글을 달아놓은 것은 아무래도 동아리 후배들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두일이가 오빠라니. 두일이에게 붙은 오빠라는 호칭은 고향을 떠나고 한참 뒤에 돌아왔을 때 마주한 고층 건물처럼 낯설면서 쓸쓸했다.

 

 두일이는 끝까지 소설동아리에 남았던 유일한 남자 동기였다. 처음에는 남자애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나자 가끔 찾아오는 머리 짧은 예비역 선배를 제외하면 동아리 전체에서 혼자 남자였던 두일이는 여자들 사이에서 섬처럼 둥둥 떠다녔다.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두일이는 국문과 이승기로 통했다. 한 달 만에 급격히 몸이 불어난 탓에 별명은 이승기와 이만기를 합친 이승만으로 바뀌었지만, 두일이는 항상 선배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여자애들은 그런 두일이를 부러워하면서도 또 두일이를 두고 묘하게 경쟁을 벌였던 것 같다. 누가 두일이랑 둘이서 밥을 먹었더라 하는 소문은 이상하리만큼 빨리 퍼졌다. 나는 두일이랑 어땠을까. 따지고 보면 나는 누구보다 두일이랑 밥을 많이 먹었는데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건 나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두일이가 동기들 중에서 나와 가장 친했던 것은 소설동아리에서 우리만 유일하게 소설이라고 할 만할 글을 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우리 동아리는 소설동아리이면서 정작 소설은 아무도 쓰지 않았다. 선배들은 우리 소설동아리는 소설 쓰는 동아리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면서 썰을 푸는 동아리라는 썰렁한 농담을 했었다. 하지만 모임 때마다 술자리만 늘어나면서 그 농담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 유난히 차가웠던 3월의 밤바람을 맞으면서 때로는 농담보다 썰렁한 진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렇게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지나갔다. 처음엔 맛있었던 기숙사 밥이 점차 질려서 식단표를 보지 않고도 내일의 메뉴를 맞출 수 있을 때쯤 두일이의 전화를 받았다.

 “야 김소망. 카페에 너 소설 올린 거 읽어봤어. 잘 썼더라. 시간 되면 밥이나 같이 먹자. 나도 썼는데 한 번 읽어볼래?”

 

 우리는 한때 대학가에 유행처럼 생기기 시작했던 화덕피자집에서 멀뚱하게 마주 앉았다. 두일이는 내게 묻지도 않고 치킨리조또와 고르곤졸라를 주문했다. 대학생이 된 처음 한 달을 제외하고는 항상 기숙사에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에 화덕피자는 처음이었다. 속으로 리조또 대신 그나마 익숙한 파스타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두일이가 내가 쓴 소설을 불쑥 내밀었다.

 “김소망, 내가 오타나 어색한 거 고쳐봤어. 기분 나쁘게 생각 하지 마.”

 나는 산모가 처음으로 자기 아이를 건네받듯 조심스럽게 내 소설을 받았다. 곳곳에 자를 데고 깔끔하게 그은 줄들과 두일이의 어른스러운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두일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짧게 고맙다고 말한 후 가방을 열어 파일에 소설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응당해야 할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너도 소설 썼다며? 보여줄래?”

 두일이가 커다란 백팩을 탁자 위에 꺼내어 뒤적이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종업원을 보며 두일이는 가방을 바닥으로 급하게 끌어내렸다. 종업원이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내려놓는 동안 두일이도 나도 잠깐 넋을 놓고 음식을 바라봤다. 종업원이 돌아가고 우리의 시선이 따듯한 김이 올라오는 고르곤졸라 위에서 마주쳤을 때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 웃음이 우리가 피자 위에 토핑처럼 놓여있던 서로의 배고픔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접시에 피자를 담아주듯 소설을 주고받았다.

 

 그때부터 1년 간 우리는 자주 만나서 밥을 먹었고, 서로의 소설을 돌려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일이의 소설은 항상 비슷했다. 한 남자가 등장했고, 그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조선시대나 미래에서나, 한국에서나 우주에서나 왠지 모르게 비슷비슷한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고백만을 앞두고 있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로맨틱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두일이의 소설은 전쟁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외계인이 침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 두일이의 소설만큼이나 내 소설을 읽은 두일이의 반응도 일관적이었다.

 “김소망, 내가 오타나 어색한 표현 고쳐봤어.”

 그처럼 한결같은 친구였기에 두일이가 쓴 소설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장마처럼 비가 쏟아지던 10월의 어느 날. 두일이가 내민 마지막 소설의 내용은 그의 다른 소설들보다 현실적이었지만 더 황당했다. 가출한 남자 아이가 드라마 대사를 폰에 입력하다가 실수로 부모에게 보내게 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남자 아이는 평소 짝사랑하던 편의점 알바에게 번호를 따다가 부모님의 문자를 받는다.

- 사랑한다, 돌아와라 -

 

 그날 두일이는 나에게 내 소설 대신 포장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나 내일 군대 가. 심견우 좋아한댔지? 이번에 새로 나왔더라. 너 소설 쓰면 나한테 편지로 보내.”

 두일이가 군대에 간 후 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쯤 두일이가 훈련소에서 첫 편지를 보내왔다. 군인이 그려진 이상한 편지지에서 오랜만에 발견한 두일이의 글씨는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짧은 편지였다. 두일이는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내 소설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만 했다.

 나는 두일이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글은 시작에서부터 막혀서 나아가질 못했다. 두일이가 선물한 심견우의 장편 스침을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무얼 한다고 아직까지 펼쳐보지도 못했을까. 나는 아무래도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편지 쓰는 것을 미루고 과제를 하기 위해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를 펼쳤다. 과제 내용을 기계적으로 타이핑하면서 키보드에 닿는 내 손끝이 마치 메스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결국 두일이의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답장을 쓰지 못했다. 조별 과제를 끝내기 위해 도서관에 모여 한참 의논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에 030으로 시작되는 낯선 번호가 떴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얼어붙은 두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소망, 잘 있냐?”

 두일이는 강원도 어디에 배치됐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땅을 파는데 계속 파면 지구 반대편이 나올 것 같다며 두일이는 어설프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있었던 공백이 두일이가 웃는 법을 잠시 잊어버린 것만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답장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서 못 보낸다고 해야 할까. 참 곤혹스러운 정적이 계속 되던 때 나를 찾으러 온 같은 조 친구가 나를 구했다.

 “소망아, 오래 걸려?”

 나는 두일이에게 지금 조별 모임 중이라 빨리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주 전화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순간 두일이와 나의 거리가 서울과 강원도만큼 멀어졌음을 직감했다.

 

 해가 바뀌고 3학년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서 교직이수를 선택했지만, 결국 내 의지로 임용고시반에 들어갔다. 소설동아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고시반에서 지금은 헤어진 남자친구를 만났다. 잠깐씩 소설동아리에 얼굴을 비추던 같은 과 선배였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봤고, 약속 시간에는 한 번도 늦지 않는 남자였다. 정말 그 사람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과제와 공부에 힘들었던 탓인지 몇 번의 고백 뒤에 못이기는 척 받아주었다. 나는 다른 연인들처럼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갔다. 기념일에는 의식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한 나날이어서 가끔은 황당한 두일이 소설의 결말이 생각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사이 두일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었다. 받으려 노력했지만 사실 대부분 받지 못했다. 허공에 전화벨이 울리던 날이 늘어나면서 두일이의 전화도 점점 뜸해졌다. 두일이에게서 받은 마지막 전화는 모텔에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깬 남자친구가 전화 좀 받으라고 핸드폰을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밀어냈을 때였다. 잠결에 집어든 전화기 너머로 두일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소망, 잘 있냐? 나 레바논 간다. 6개월 동안.”

 내가 전화를 받는 동안 남자친구는 계속해서 내 몸을 더듬거렸다. 남자친구의 손이 너무 건조하고 뜨겁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나는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비틀어 남자친구에게서 빠져나왔다. 나는 두일이에게 할 말을 조심스럽게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막만큼 메말라 있었다.

 “몸 건강히 잘 지내.”

 나도 모르게 응당해야 할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마음 속에서 두일이는 이미 레바논에 있었다.

그 뒤로 두일이에게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았다. 4학년이 되고, 교생실습을 다녀왔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찾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다가 올 시험을 준비했다.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동기들에게 두일이가 곧 복학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일이가 함께 복학한 친구들과 동기들을 만난다는 소식도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나갈 수가 없었다. 두일이가 있다고 어서 오라는 몇 번의 전화도 모두 시험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시험장에 들어가던 아침. 나는 나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머리를 한 사람들 사이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앉아있는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훑어봤다. 사람들의 어깨는 딱딱해보였다. 하지만 그 어깨를 풀만한 여유까지도 긴장감에 잡아먹힌 표정이었다. 잠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들을 동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순간 나는 사방이 거울로 되어있는 방에 갇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다. 그들이 남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긴장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쫓기는 심정으로 시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나는 이미 내년 시험을 계획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서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을 핑계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쉽게 누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를 숨긴 채 도둑고양이처럼 페이스북에서만 그들의 일상을 훔쳤다. 페이스북에서 시험장의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군가는 1차 시험에 합격했고, 누군가는 회사에 취직했다. 한 커플은 연애를 시작했고, 한 여자는 이별을 겪었다. 그들은 그 모든 일들을 좋아했다. 화가 나거나 슬픈 일에도 그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요라고 외쳤다. 쉽게 모든 일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요라고 외칠 수 있을까?

 

……

 

 심견우 작가의 강연은 저녁 7시였다. 나는 강연장에 있을 일들을 생각했다. 두일이를 만날 것이고 심지어 두일이의 후배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두일이는 후배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갑자기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일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 몰래 갈까. 차라리 당당하게 가는 것만 못한 것 같다. ‘뭐 예전에 정말 친한 사이였으니까.’라고 쉽게 생각하다가도 두일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이라고 인사하면 두일이의 입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레바논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생각에 치여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어차피 나는 중학교 2학년의 김소망에게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가슴에 박힌 얼어붙은 화살이 녹을 때를 읽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병처럼 앓고 있는 물음이 있었다. 메일로 보내볼까도 생각했지만 심견우 작가를 만나서 꼭 그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답이 있었다. 심견우 작가는 워낙 집밖으로 나오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가슴에 박힌 얼어붙은 화살이 녹을 때는 얼음미라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까쨔는 모스크바 해부학연구소의 연구원이다. 그녀는 베르호얀스크에서 발견된 5000년 된 얼음미라 꼰스딴진을 연구하고 있다. 흉골에 화살이 박힌 꼰스딴진은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었다. 까쨔는 당직 중에 오랫동안 식물인간상태였던 남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가 길거리에 있는 아무 남자를 붙잡고 자신과 섹스해달라고 말한다. 한 부랑자와 골목에서 정사를 나눈 까쨔는 연구소의 보존실로 들어와 꼰스딴진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는다. 화살을 들고 보존실을 나온 까쨔는 화살로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하지만 화살은 녹아 없어진다.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얼어붙은 화살은 내가 알고 있던 교과서의 소설들과 너무 달랐다. ‘얼어붙은 화살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그 당시 나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뒤로 그 소설을 읽을 때마다, 거의 모든 평론을 찾아 읽었다. 그 어떤 호평과 혹평도 내가 받은 느낌을 넘어서진 못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얼어붙은 화살을 처음 본 그때부터 작가를 만나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꼭 묻고 싶었다. 그 일이 오래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일이 될지라도 나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연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식당에 내려갔다. 5시 반에 도착한 식당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오늘의 메뉴는 닭죽이었다. 닭가슴살과 야채가 둥둥 떠다니는 희끄무레한 죽을 보자 입맛이 싹 달아났다. 억지로라도 한 숟갈 떠 넣어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방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샤워를 했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내 몸에 닭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다시 씻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결국 또 샤워실로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샤워를 끝내자 6시였다. 화장도 하고 옷도 꺼내 입으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신발장에 붙어있는 전신 거울을 보면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다. 빨간색 코트를 입고 가면 후배들이 주책으로 보겠지. 그렇다고 야상을 입고 가기에는 뭔가 후줄근히 대충 입은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외출인지라 기왕이면 예쁘게 보이고 싶지만, 치마를 입기에는 받쳐 입을 외투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40분이 되서야 울며 겨자 먹기로 파랑색 패딩점퍼에 청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강연이 열리는 대강당까지 제 시간에 가려면 운동화를 신고 뛰어야 했다.

 급하게 나오다가 사인을 받으려면 책을 들고 가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방으로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 절룩이는 그림자와 손에 잡히는 심견우의 책 하나를 가방에 쑤셔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서자 속까지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허리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밖으로 나온 다른 부위는 춥다고 아우성이었다. 대강당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화장이 지워지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옆에는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날씬한 몸매. 그녀는 이 날씨에 짧은 치마를 입고 15cm는 되어 보이는 킬힐을 신고 있었다. 존경심과 욕지거리가 동시에 올라왔다. 나는 그녀 옆에서 거울을 함께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빨리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강연장 입구에 도착하자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무대 위 심견우 작가의 사진을 커다랗게 붙여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책날개에서 봤던 사진보다 머리가 더 하얘진 것 같았다. 강연장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면서 그리 많은 사람이 앉아있지 않은 객석에서 두일이의 뒷모습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두일이도 심견우 작가처럼 머리가 하얘져 있을 것만 같았다. 주위를 살피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 천천히 강연장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멀리서 두일이가 나를 불렀다.

 “김소망!”

 두일이의 목소리는 강원도에서 들었던 목소리처럼 얼어있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레바논 말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두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살은 조금 빠졌지만 군대 가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고 싶었는데, 얼굴 근육이 자꾸만 어색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인사하려고 했지만 손과 다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소란스러운 두일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두일이가 있는 자리까지 갔다.

 나는 두일이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막 앉으려고 하는 순간 두일이 옆에서 한 여자애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나에게 인사했다. 경황이 없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답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댓글로는 여러 명이 온다더니 한 명밖에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의자에 등을 기대자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땀에 젖은 손을 펴보니 가방끈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작은 동작으로 허벅지에 손을 문질렀다. 청바지에 남아있는 차가운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김소망, 잘 지냈냐?”

 두일이가 나를 살짝 내려다보며 물었다. 두일이의 키가 그렇게 컸던가. 나는 새삼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두일이가 신기해보였다.

 “그냥 그렇지 뭐. 너 하나도 안 변했다.”

 두일이에게 첫 마디를 내뱉고 나서야 조금씩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일이 옆에 앉은 여자애는 우리의 대화에 서먹서먹했는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예의상 두일이에게 고갯짓으로 여자애를 가리키며 누구?’라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아 참. 영아야 인사해. 내가 이야기 많이 했지? 소설 잘 쓴다는 선배. 내 동기고 이름은 김소망. 얘는 이영아. 우리 과 후배야.”

 두일이가 여자를 그런 식으로 부른 적이 있던가. 두일이는 나를 부를 때 한 번도 이름만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영아야라니. 영아라고 불린 여자애는 다시 고개를 내밀어 나에게 인사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제야 영아의 갈색머리와 짧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에서 봤던 그 아이였다. 정면에서 마주보니 훨씬 더 눈이 크고 또렷해보였다. 저런 눈을 화장으로 감추기에는 아직 소녀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언니 안녕하세요? 오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빠랑 동갑이라면서요? 저 빠른이라 저보다 4살이나 많으신데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 네. 그래, 그러자.”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4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공격적으로 들렸다. 영아가 빠르게 내 위아래를 훑어보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순간 영아의 예쁜 얼굴에서 최대한 예의바른 사람처럼 보이려는 무장이 해제되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지나간 영아의 비웃음.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 한지 오래 되서 끝이 다 갈라진 머리. 내 몸보다 한 치수 큰 파란 패딩점퍼. 울퉁불퉁한 다리 선을 드러내는 물 빠진 청바지. 그리고 영아의 콧날처럼 당당하게 고개를 든 킬힐 앞에서 한 없이 수그러드는 더러운 내 운동화. 마치 내 모든 것이 그녀를 돋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두일이의 팔꿈치가 나에게 닿았다. 심견우 작가가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졸다가 들킨 학생처럼 사람들을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심견우 작가의 키는 생각보다 작았다. 자신감 없이 굽어있는 그의 자세가 안 그래도 작은 키를 더 작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자마자 다시 사람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부끄러운 듯 몸을 뒤로 젖히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작은 눈을 따라서 손금 같은 주름들이 짙어졌다가 다시 엷어졌다. 그는 갑자기 목이 막힌 사람처럼 기침을 하더니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앉아서 강연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자 그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앉지 말라고 했으면 서서 했을 건데 감사합니다. 대신 여러분도 서서 듣게 하려고 했어요.”

 그의 썰렁한 농담에도 사람들은 잘 웃어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웃지 않았을 나도 사람들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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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견우 작가의 강연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가 왜 작가가 되었고, 어떻게 작품들을 썼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 영아를 곁눈질했다. 영아는 지루한 듯 졸다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만지다가를 반복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탄성이 나오면 반 박자 늦게 자기 소리를 보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위축되었던 내 자신감을 조금 회복시켜주었다. 그럼 그렇지. 한 겨울 미니스커트와 킬힐의 교양은 기대할 것이 못 된다는 나의 예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문학은 스타벅스와 함께 그녀의 허영을 장식할 액세서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재미없는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원래 두 시간 계획했었는데 너무 일찍 끝났네요. 그래도 약속한 시간은 지켜야 하니까. 한 시간 동안은 여러분들 궁금하신 거 있으면 질문 받을게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그 모습은 마치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전투적이었다. 나도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쓴 소설들, 두일이,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오게 했던 모든 것들은 그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에 심견우 작가가 대답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물음을 가다듬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슴에 박힌 얼어붙은 화살이 녹을 때」를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꼭 작가님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시게 되었나요?’

 나는 혹시 실수를 할까 기도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질문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읊었다.

 “좋은 질문들이 많네요.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되서 질문 딱 두 분만 더 받을게요.”

 심견우 작가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연습했건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객석에 마이크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일단 갈색머리 여자분 질문 먼저 받고, 바로 옆에 파랑 옷 입으신 분 질문 마지막으로 받을게요.”

옆을 바라보니 영아가 마이크를 전해 받아 일어섰다. 시간을 벌었다. 나는 처음으로 영아가 고맙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가슴에 박힌 얼어붙은 화살이 녹을 때」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그래서 작가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쓰시게 되었나요?’

바로 옆에서 듣는 영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다시 나올 때까지 나는 영아의 말을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 그건 언니가 내 일기장을 가족들 앞에서 읽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제 소설 좋아하시는 분 중에서는 얼어붙은 화살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자선 대표작을 꼽으라고 하면 언제나 얼어붙은 화살을 꼽을 정도로요. . 이 소설은 제가 여러분 나이 정도. 그때가 1992년이니까 27살이었네요. 여러분들보다 조금 많죠? 제가 88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23살에 등단이면 굉장히 어린 편이죠. 지금 생각하면 엄청 대단한 일인데. 하여튼 그때는 멀쩡하던 친구가 죽어나오던 시절이니까 친구가 소설가가 된 건 그리 큰일이 아니었나 봐요. 별로 주목을 못 받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이라고 글을 계속 쓰고 있었으니까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내보자 해서 낸 건데, 그게 덜컥 돼버린 거죠. 그래서 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군대에 갔어요. 대학교 2학년 마치자마자 가서 30개월에서 90일 정도 단축됐는데 23개월 정도 되나요? 어이구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그러니까 질문이 뭐였죠? 얼어붙은 화살’.”

 심견우 작가는 바닥에 놓여있던 물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년 재수했으니까 군대에 갔다 오니 25살이 됐어요.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어요. 대머리 아저씨는 없어지고, 없어졌던 친구들은 돌아와 있었고. 군대에 가기 전에 짝사랑했던 아가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깊은 관계도 아니었어요. 저는 되게 사랑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도 못해봤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웃긴 얘기죠? 군대 가고 갑자기 연락이 끊어져서 다른 남자가 생겼구나 했죠. 왜 죽었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정신을 못 차렸어요. 1년 동안 그냥 놀았죠. 사람 꼴이 아니었어요. 나름대로 방황을 한 거죠. 그래도 저는 소설가잖아요? 등단도 했고. 그래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얼음미라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군대에서 90년인가 91년인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신문기사를 읽었어요. 스위스에서 한 독일인 부부가 얼어붙은 미라를 발견했더라구요. 그게, 아니 그 사람이 5000년 전 사람인데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죠. 그 상태 그대로 5000년 동안이나 얼어있었으니 얼마나 슬퍼요. 죽은 것도 억울한데 5000년이나 혼자 있다니 되게 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변하는 동안 그대로 죽어있는 것도 뭔가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발견될 때까지 이야기 말이에요. 그럼 장편이 될 거고. 장편이면 어디에 연재를 할 거고. 뭐 이렇게 생각했죠.”

 심견우 작가가 잠시 이야기를 끊고,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릴 정도로 강연장은 조용했다.

 “이야기가 되게 길어졌네요. 약속도 있으실 건데 빨리 끝낼 게요. 그런데 그 소설은 결국 쓰지 못했어요. 겨우 27년 산 사람이 5000년 동안 죽어있었던 사람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었죠.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때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어요. 소설가라는 놈이 몇 년 동안 생각한 걸 글로 옮기지도 못하고 저는 그냥 소설가가 될 자격이 없는 놈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뒀어요. 그 얘기는 아까 했었죠? 소설을 못 써서 아버지 공장 일 도왔다고. 그게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어요. 거의 4년 동안 매일 공장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거짓말 안하고 한 번도 그 얼음미라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게 저한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결국 저는 다시 소설을 쓰게 됐어요. 살기 위해서요. 다른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그 얼음미라한테는 계속 빚진 기분이었어요. 그때 김광석씨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살인지 타살인지 엄청 말이 많았는데. 뉴스를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죠. 왠진 모르겠지만 그 순간 다시 얼음미라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얼어붙은 화살에 얼음미라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잖아요? 웃긴데 쓰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분명 얼음미라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다 쓰고 나니까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있었어요. 그래도 마지막 문장을 끝내는 순간 알았어요. ‘내가 소설을 썼구나.’하구요. 답변이 좀 되셨나요?”

 심견우 작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에 박혀있던 얼어붙은 화살이 뽑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5000년 동안 유일하게 그와 함께 했던 그 화살이. 어안이 벙벙해서 깜빡 잘못하면 심견우 작가의 말을 듣지 못할 뻔 했다.

 “저기 파란 옷 입은 여자분. , 거기. 마지막으로 질문 받을게요.”

 두일이가 영아에게서 마이크를 받아 내게 건넸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하던 강연장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아직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소화하지 못했다고 말 하고 싶었다. 지금 천천히 되뇌어도 몇 번이고 다시 올라올 거 같다고. 방금 그 질문은 내 것이어야 했는데…. 마이크로 목이라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울상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심견우 작가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내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 저기.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내가 심견우 작가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동안, 두일이와 영아는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쪽을 한 번 쳐다보자 두일이가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영아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두일이 옆에 코알라처럼 달라붙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거의 내 차례가 다되었을 때 나는 가방을 열어 책을 꺼냈다. 한 권은 내가 가장 아끼는 절룩이는 그림자, 다른 한 권은 두일이가 선물한 스침이었다. 너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한 번도 펴보지도 못한 책을 가지고 나와 버렸다. 나는 내가 책을 들고 있는 것을 혹시 두일이가 볼까 봐 두일이가 있는 쪽에서 몸을 돌렸다.

 “아까 그 사인 아가씨네. 사인 드릴게요. 이름이 뭐에요?”

 나는 내 차례가 된 지도 모르고 깜짝 놀라서 심견우 작가에게 절룩이는 그림자를 내밀었다. 그는 소설 쓰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동작으로 책의 앞장을 펼쳐서 오늘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망이에요. 김소망.”

 - “저기. 사인 여기 있습니다.” 김소망님에게 -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주실래요?”

 내가 주춤거리는 동안 심견우 작가는 조심스럽게 나에게서 스침을 가져 갔다. 읽어보지도 못한 책에 사인을 받으려니 뭔가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 이거 전에 제가 사인한 거네요. 201091. ‘저보다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예요.’ 아 기억난다. 그 친구 잘 지내요?”

 순간 나에게 심견우 작가의 말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타국의 방언처럼 들렸다.

 “?”

 “사인 받으러 왔던 친구.”

 나는 심견우 작가가 내 얼굴에 쓴 당혹이라는 표정을 읽어주길 바랬다. 그것 말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91일이 소망씨 생일이죠? 그때 두일이란 친구가 부산에 있는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저희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곧 군대에 간다고 했었는데…….”

 나는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 다녀왔어요.”

 심견우 작가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이렇게 들고 나온 걸 보면. 두 사람 잘 지내나보네요. 사인을 해주고 나니까 그 친구가 몇 번이고 인사를 하더군요.”

 - “저보다 훌륭한 소설가가 될 거예요!” 김소망님에게 -

 심견우 작가에게 책을 받아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땅만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침착한 동작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심견우 작가의 목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소망씨, 소설 잘 쓰고 있죠?”


 강연장을 나올 때까지 터지려는 울음을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강당 옆 공터 벤치에 앉자마자 볼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옆에 책 두 권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았다. 얼어붙은 얼굴을 청바지에 파묻었다. 뻣뻣해진 청바지가 거칠게 내 얼굴을 헤집었다. 그때 누군가 내 옆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두일이였다. 두일이의 몸이 닿은 부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가 점점 따듯해졌다. 그만 울 수 있었는데. 두일이 때문에 아무래도 그치지 못할 것 같았다.

 “두일아. 나 떨어졌어. 시험 떨어졌어. 시험. 두일아. 두일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닌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말만 자꾸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아닐 텐데.


 두일이는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 순간의 정적이 아침 이불 속처럼 느껴져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침묵의 온기가 내 체온을 다 데우고 나서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두일이의 모습이 보였다. 두일이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눈물을 닦으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말을 찾았다.

 “영아는?”

 두일이는 옆에 놓여있던 책을 들고 일어났다.

 “남자친구 만나러 갔어. 우리 동기 현진이 알지? 걔 여자친구야. 복학하더니 현진이도 동아리 나오더라.”

 나도 두일이를 따라 일어났다.

 “현진이가?”

 두일이가 내 손에 든 휴지를 가져가더니 옆에 있던 휴지통에 버렸다.

 “응. 현진이가. 김소망 시간되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두일이 배에서 꼬르륵하고 소리가 났다. 아무 말 없이 두일이와 함께 걸으면서 나는 요즘 들어 처음으로 허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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