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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법을 믿었다. (일루셔니스트, 2011) 본문

감상/영화

우리는 마법을 믿었다. (일루셔니스트, 2011)

들림 2013. 8. 8. 13:17

 


일루셔니스트 (2011)

The Illusionist 
8.7
감독
실뱅 쇼메
출연
장-클로드 돈다, 에일리 란킨, 던칸 맥닐, 질 아이그롯, 디디어 구스틴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 영국, 프랑스 | 80 분 | 20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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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법을 믿었다.

 

 마법은 환상의 영역이다.  환상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라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에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MAGiCiAN DO NOT EXiST). 단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불러일으키는 마술사(illusionist)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때론 환상이 걷힌 현실은 동화보다 아름답다. 자신의 마지막 관객일지도 모르는 스코틀랜드 소녀 앨리스에게 늙은 마술사는 그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마법사가 된다. 구두를 사주고, 옷을 사준다. 그녀에게 그 모든 것은 마법이다. 많은 동화나 애니메이션이 그 정도 수준에서 마법을 다룬다. 그러나 <일루셔니스트>는 현실의 영역에서 마법을 다룬다. 늙은 마술사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세차장에서 일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한다. 그것은 마법사의 마법보다 경이로운 현실의 기적이다.

 

 성경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오천 명의 사람들이 저녁 때가 되자 먹을 것이 없어서 고민한다. 이때 한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는다. 예수님은 축사하고, 앉은 자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오천명의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바구니나 남았다는 기적의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 관한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오천명의 사람들 중 먹을 것을 챙겨온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의 먹을 것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 모두 결과는 같다.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에는 '희생'이 숨어있다. 베품이 아니라 나눔이다. 그래서 현실의 마법은 아름답고 경이롭지만, 또 한 편으론 씁쓸하다.

 

 이 영화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일루셔니스트>는 세계적인 배우자 감독이었던, 자크 타티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그렇다면 <일루셔니스트>는 더욱 가슴 아픈 부정으로 다가온다. 결국 젊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해하는 앨리스. 그리고 그 앨리스 곁을 떠나는 쓸쓸한 일루셔니스트. 시골소녀 앨리스가 예쁜 옷과 구두를 신은 공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법들이 있었는가.(자식 키워봤자 뭔 소용이야.) 마치 우리가 아버지를 믿었던 것처럼, 앨리스는 그 모든 것을 마법으로 믿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제게 영웅이셨죠
작은 내게 당신의 존재는 신보다 컸었죠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고 그 누구보다 해박한
당신이 나는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 다이나믹듀오 <아버지> 中 -

 

 

 <일루셔니스트>의 빛나는 점은 환상의 실체를 사라져가는 것들로 묶어냈다는 점이다. 항상 웃고있는 가면이 벗겨진, 삐에로의 슬픈 표정처럼. 3D 애니메이션에 밀려나는 2D 애니메이션. 젊은 락 가수에 밀려나는 늙은 마술사. 목을 매는 삐에로. 그리고 인형을 팔아버린 인형사. 그 모두가 환상이 없어진 시대에 사라져가는 슬픈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건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상 위에는 사라지는 것들의 하모니가 은은하게 퍼진다.

 

 앨리스를 떠난, 일루셔니스트는 기차에서 한 아이를 만난다. 몽당연필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일루셔니스트는 긴 연필을 내밀지 않는다. 그건 환상의 종말이고, 마법사의 죽음이다. 세상에 마법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MAGiCiAN DO NOT EXiST).

 

 

 우리는 마법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화보다 아름다운 현실은 있다.
 현실보다 쓸쓸한 동화도 있다.

 

 환상의 세계를 끝없이 빠져나가고 싶었던 토끼는,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환상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환상의 실체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도 외로운, 사라져가는 것들의 하모니

 

 

 

 

 영화 <일루셔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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