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 평상
영화 손님 (2015) 본문
모양새는 다른 나라의 전통요리를 우리식으로 잘 소화한 셈입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쳐 멜로, 코믹, 드라마 등 온갖 조미료를 영화에 다 집어넣었습니다. 결국 판타지 호러라는 요리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영화는 힘을 잃습니다.
또한 영화 곳곳에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나병 환자, 쥐, 등장인물의 이름 등 상징적 요소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물론 영화를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모호함을 두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해석들이 텍스트 안에서 논리적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지요. 이 영화는 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 급급합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원작 민담과 같이 "약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오늘날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겠네요. 동시에 앞서 언급한 상징들이 끌고 들어오는 또 다른 키워드는 손님으로 대표되는 '이방인, 타자, 소수자'입니다. 충돌은 바로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영화는 약속(금기)을 어기는 데서 출발한 영화의 플롯은, 이방인을 받아준 소수자 - 이방인의 배신 - 소수자의 저주 - 이방인의 방문 - 다수의 배신 - 이방인의 복수 의 구조로 이어집니다. 결국 어떻게 보면, ‘약속을 어긴 대가’인 복수에 대한 이야기지요. 호러를 표방하는 영화의 장르적 문법에 따라 복수는 ‘공포’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손님>의 지배하는 공포의 정서는 바로 ‘혐오’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와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다루고 싶어 하던 문제의식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손님>의 텍스트로서 확장성은 이 지점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나라에서 ‘쥐’가 갖는 또 다른 상징성 역시 주제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지요.)
어디서 본 듯한 과도한 인용도 거슬립니다. 권위적인 촌장이 집권하는 폐쇄적인 마을의 모습은 영화 <이끼>를 떠올리게 하고, 외부와 단절된 상황 등은 <빌리지>와 유사합니다. 이 기시감은 오마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님>을 <이끼>와 <빌리지> 같은 작품들이 이룬 성과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아류로 보이게 합니다.
그럼에도 <손님>에는 김광태 감독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몇몇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뿌려놓은 떡밥들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두 회수한다는 점입니다. ‘좌시’나 ‘그네’, ‘바람’ 등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조금 다른 얘깁니다만, 적어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 그 노력 자체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감독의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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