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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공포증

들림 2016. 5. 25. 23:31

물공포증

 


난 트라우마에서 태어났어

 

양부모는 반쯤 덜 불행하길 바랐어

줄담배와 코 묻은 휴지가 서로를 더듬고 몸을 섞던 날

(출생의 비밀)

 

두 지류에서 흘러온 오폐수 거품이

씨앗주머니처럼 펑 하고 터질 때

난 발아했어

 

내 손과 발은 그런 걸 먹고 잘도 자랐지

아무거나 잘 먹어요

손짓발짓으로 거짓말부터 익혔지

 

그때부터

몸속에 발소리가 따라오는 골목이 흘러

지독한 스릴러 감독도 로케이션을 포기했다나

 

장마가 계속되는 철거촌

대략 3일에 한 번만 약에 취한 해가 떠

손꼽아 기다리는 열흘에 하루

소풍날에는 꼭

까만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잠복근무를 해

 

난 건기에도 허우적 허우적

아마 달에서도 발버둥치다 익사할 거야

 

누군가 잡아주어 똑바로 서면

4등신이라도 숨 쉴 수 있을 텐데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기 싫었어

그럴 땐 언제고

 

결국 더치페이 따위 셈을 해

나란히 70%에 잠기는 꿈

그나마 최대한 덜 무서운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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