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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인간의 실존에 대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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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인간의 실존에 대해'

들림 2012. 1. 22. 01:07
소유냐 존재냐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차경아 | 까치(까치글방) | 200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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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고전이라 함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한다기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시대가 흘렀음에도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도 그런 책이다.

인간과 사회, 세상의 실존 양식을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분석하는 그의 솜씨는 놀랍다. 그는 철학자들로부터 일상 생활, 그리고 성서로 이르기까지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한 뒤, 이 두 실존양식의 본질에 대해서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재적 실존양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소유적 실존양식에 대한 경계는 프롬이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롬이 해석한 소유라는 개념이 갖는 존재의 상실은 정말 무섭게 와닿는다. 소유 한 것으로 인간의 존재가 결정된다면, 소유하던 것이 사라지던 순간 인간의 존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구성될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주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설명이 필요했을까 느껴진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보면 사회에 대한 비전이라 할 수 있는 책의 3부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고민해야 할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자기 보존 본능을 마비시키는 또 다른 근거는 개개인이 당장 눈앞에서 감당해야 할 희생보다는 차라리 아득해보이는 막연한 재난 쪽을 택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널리 만연된 태도이다.

커스틀러가 스페인 내전에서 겪은 체험담은 이런 태도에 대한 적절한 예를 보여준다. 프랑코 군대가 진격해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커스틀러는 마침 한 친구의 안락한 별장에 머물러 있었다. 군대가 그날 밤 안으로 그 집에 당도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총살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고, 도망을 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바깥은 춥고 비 내리는 어둠뿐이었고 집 안은 따스하고 아늑했다. 그래서 그는 주저앉았고, 결국 포로가 되었다(25~26p)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거나 뒷걸음치는 태도, 요컨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상당히 큰 유혹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그것에 매달릴 수 있다.


우리는 미지의 것, 불확실한 것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데에 불안을 느끼며, 그래서 그렇게 하기를 피한다. 그 발걸음은 일단 내딛고 난 다음에는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러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위험스럽고 겁나 보인다. 

옛것, 이미 겪어본 것만이 안전하다. 아니, 최소한 안전한 듯하다. 새로 내딛는 발걸음은 실패의 위험을 감추고 있고, 이것이야말로 왜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하는 이유의 하나이다.(150p)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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