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 평상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광저우와 파리를 거쳐 리스본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목적지를 모른 채로 떠나는 비행과도 같았다. 낯선 말들에 당황하고, 연착으로 밤을 지새우고, 굳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긴 대기시간을 지나며 입국과 출국을 반복하는... 결국 이 지리멸렬하고 고된 여정들은 당신에게 닿기 위한 경유지였다. 그렸던 땅과 바다가 창 너머로 아득하게 보일 때 우리가 도착을 실감하는 것처럼. 2층 창밖으로 당신이 걸어오는 것을 보며 삶의 목적을 확신했다. 내 지난 날들을 비로소 긍정하게 됐을 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신을 향해 삶의 중심으로.
가을로 만나다 넌 손끝이 시렸고, 내 손은 괜스레 따뜻했지. 난 늘 가을을 기다렸는데. 가을은 너의 손과 내 손이 맞닿은 곳에 있었지. 우리의 온도가 가을이였지. 8월의 내가 너에게, 12월의 네가 나에게. 너와 난 같은 빠르기로 서로를 향해 반만큼 걸어왔지 2011년의 일기 속에서, 해묵은 꿈 속에서 우리는 현실로 걸어나와 10월에 만났지. 유난히 파란 하늘을 수놓을 울긋불긋한 나무들처럼 나의 세계는 너로 물들겠지 여름은 끝났고, 우리의 계절이 시작되었지.
바삐 일어나느라 밥을 하지 못한 날. 혹은 아침 차려먹기 귀찮은 날. 출근길을 조금 돌아 맥도날드 서면점에 들러 맥모닝 세트를 먹곤 한다. 서면으로 출퇴근하기 전까지, 내게 주디스태화 앞은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였다. 그곳은 원래부터 약속명소였다. 평범한 목요일 저녁, 그저 퇴근하는 걸음 중 하나. 나는 그곳에 멈춰섰다. 녹색당과 노동당의 공동정당연설회가 있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발부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지나는 길이고 시간대도 맞아 참석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 무척 반가웠지만, 어쩐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가능한만큼의 미소와 눈인사를 나눈 후 현수막 뒤에 섰다. 우산과 가방을 내려놓고 녹색 종이를 들었다. 발언자 분들의 목소리는 엠프를 나오기도 전에 나에게 닿았다. 나란히 ..
여로 연필은 닳은 말발굽게르조차 견디지 못해사막으로 쏟아지는 밤 맨살에 부딪혀세말하는 별자리 소녀는 오늘도 국경을 넘어백지를 달리는 이름의 획 빛과 어둠에 부둥키는머나먼 가루의 나라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친구의 생일에 이야기를 보탰다.몽골 여행이나, 자기 이름으로 된 장르를 쓰겠다는 그런 말들. 모든 것을 벗어나 달리는 문장을 상상했다. 재밌는 친구다.
걸어가는 말 40도의 소나기라 생각했다몸을 질러 달아날 준비를 하며해가 한쪽 뺨에 머춤으면앓았던 일도 잊어버리는 아침이 올 거라고 너는 소리를 크게 벌려 이야기하곤 했다서울살이에 녹아 흐물러버린 말씨에도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단어들을 보며내 생각이 틀렸음에 감사했다 네가 익히고 있다는 나라의 말은유난히 피어나는 꽃향기처럼 들린다나는 멎지 않는 우기를 헤엄치는나비의 젖지 않는 날개를 상상해보았다. 그곳에서도 너는갓 지은 밥처럼 숨을 내쉬면서자라나는 무릎이 지르는 비명을 듣겠지너의 이야기는 여물어가는 꿈들의 뒤를 쫓아성큼 경쾌하게 보폭을 넓힐 거고 토요일은 친구의 생일이였다.연락이 끊기지 않은 몇 안되는 친구다.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시를 지었다.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 살아주길